#이름에대한생각

이름에 대한 생각

이름결에 자주 찾아오는 고민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야기입니다. 특정한 분의 사연을 그대로 옮기지 않습니다.

98%와 2%

작명소에 다녀온 부모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지은 이름이 안 좋대요." 어떤 격이 흉수라서, 어떤 글자가 사주와 안 맞아서. 그래서 이름을 바꾸거나, 바꾸지 못한 채 마음에 작은 그늘을 들이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름은 누가 짓는가. 열 달을 기다리며 수십 번 불러 보고, 부부가 밤마다 종이에 적어 보고, 양가 어른께 여쭈어 고른 이름이다. 그 정성이 이름의 98%다. 소리가 예쁜지, 부르기 쉬운지, 뜻이 아이에게 어울리는지 — 부모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머지 2%가 전통 작명의 원리다. 성과 이름의 소리가 이어지는지, 사주에 적은 기운을 글자가 채우는지, 획수가 길한 숫자를 이루는지. 이것은 알면 더할 수 있는 것이지, 모르면 틀리는 것이 아니다.

이름결이 점수를 매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98점짜리 이름에 "2점이 모자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직한 말이지만 좋은 말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 이름은 이미 이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더하고 싶다면 이것을 더할 수 있습니다."

더하는 방법도 이름을 고치는 것만이 아니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 아이 방에 두는 물건 하나, 부모가 길러 주는 습관 하나. 이름은 종이에 적힌 세 글자가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결 전체이기 때문이다.

율곡의 아명은 현룡이었다

이이(李珥)는 어릴 적 집에서 현룡(見龍)이라 불렸다. 어머니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낳았다는 데서 온 이름이다. 자라서는 자(字)를 숙헌(叔獻)이라 했고, 호는 율곡(栗谷) — 밤나무 골짜기, 외가가 있던 파주 마을 이름이다. 한 사람에게 이름이 넷이었다.

옛사람들이 이름을 여럿 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예의였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名)은 아껴 두고, 어른이 되면 자를 받아 벗끼리 그것으로 불렀다. 호는 스스로 짓거나 벗이 지어 주었다. 정성 들여 지은 이름을 아무 데서나 부르는 것을 꺼린 것이다.

오늘 우리에겐 이름이 하나뿐이다. 서류에도, 학교에도, 병원에도 같은 이름이 적힌다. 그래서 그 이름 하나에 모든 바람을 다 담으려 하고, 다 담기지 않으면 모자란 이름이 된다.

이름결은 옛 아명과 호의 자리를 '애칭'으로 다시 연다. 본명이 품지 않은 결을 집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보태고, 아이가 자라면 아이의 소망을 거기 담는다. 본명은 바깥에서, 애칭은 곁에서. 두 이름이 서로를 보완한다.

현룡이라는 아명은 율곡의 본명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의 꿈을 아이 곁에 두었을 뿐이다.

출생 시간을 모르는 이름

"시간을 모르면 사주를 못 봅니다." 작명소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사주 여덟 글자 중 두 글자가 태어난 시각에서 오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반만 맞다.

시간을 모른다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열두 가지 중 하나라는 것이다. 자시부터 해시까지 열두 시진 가운데 어느 하나다. 그렇다면 열두 가지를 모두 세워 보면 된다. 열두 사주를 다 놓고, 어느 경우에도 넘치지 않고 어느 경우에도 모자라지 않는 글자를 고르는 것이다.

이렇게 고른 이름은 오히려 더 단단하다. 시간을 아는 이름은 그 시간 하나에 맞춘 이름이지만, 시간을 모르는 이름은 열두 경우를 모두 견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름결은 이것을 "12가지 시간 중 12가지에서 조화"라고 적는다. 새벽인지 저녁인지만 기억나도 경우의 수는 두 가지로 줄고, 전혀 모른다면 열두 가지를 다 본다.

오래된 출생증명서를 뒤지지 않아도 된다. 어머니가 "해 뜰 무렵이었지"라고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그것조차 없어도 된다.